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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신에서 간신으로

🧠 고려 후반,

나라가 뒤집히던 그 시기.

처음엔 충신이었어요.

그런데 끝은— 산과 들을 잇는 간신이었죠.

그 이름, 임견미.

왕을 지켜 세운 손이, 곧 나라를 짓밟는 손이 됐습니다.


📜 우달치 출신

처음엔 군인이었어요.

몽고식 조직, 우달치 소속.

그중에서도 눈에 띄던 인물이 바로 임견미였습니다.

공민왕 초기.

홍건적이 몰려왔고, 나라가 무너질 듯 휘청였죠.

 

홍건적 20만.

개경은 함락됐고, 공민왕은 도망쳤습니다.

그때 나주 도병마사였던 임견미가 직접 호종에 나섭니다.


🔥 울며 간언한 병사

공민왕이 경기도 경안역에 이르렀을 때,

임견미는 절규하듯 말했습니다.

 

 

“개경은 이미 넘어갔습니다.
각 도의 군사를 징발해야 합니다.”

재추들은 거절했죠.

그의 말은 무시당했고, 그는 울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공민왕이 결국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죠.

 

결과는 성공이었어요.

각지에서 군사를 모았고, 3개월 만에 개경을 수복합니다.

임견미는 1등 공신으로 올라갔습니다.


🧠 전쟁터를 누비던 장수

그는 단순히 말 잘하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진짜 싸우는 사람이었죠.

진주 도병마사 시절엔,

김용의 자백을 이끌어냈고,

목호의 난 때엔,

제주까지 내려가 부원수로 토벌 작전을 수행합니다.

이성계와 함께 동녕부를 쳤고, 원나라의 연경이 위태롭다는 소식이 들렸을 땐 직접 평안도 순무사로 투입됩니다.

📌

전투력도 있었고, 정보도 빨랐고, 결단력도 있었습니다.

이쯤이면 ‘무장+정치가’ 포지션으로 정치판에서도 꽤나 강한 카드였어요.


📌 그리고, 분기점

공민왕 때까지는 충신으로 분류됐죠.

그런데 공민왕이 죽고, 이인임이 권력을 잡으면서 상황이 바뀝니다.

도평의사사에 들어간 뒤,

그는 자리를 바꿉니다.

이인임 쪽으로 붙어요.


 

⚔️ 권력은 탐욕을 먹고 자란다

🔥 한번 돌아선 충신은

누구보다 빠르게, 깊게 부패했습니다.

임견미는 이인임의 품에 안겼고, 그때부터 그는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괴물이 됐습니다.


📌 왕도, 무시했다

우왕이 부릅니다.

한 번, 안 갑니다.

두 번, 또 안 가요.

병을 핑계로 버팁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내가 병인데,
어찌 대궐까지 나갑니까.”

왕이 두 번이나 불러야

겨우 발걸음 옮기는 신하.

그게 임견미였습니다.


🧠 내재추, 실세의 상징

우왕이 만든 ‘내재추’.

이건 별청재추라 불리기도 했는데,

도평의사사가 너무 커지면서 결정을 못 내리는 걸 막기 위한 왕의 직속 참모기구였어요.

임견미가 여기에 들어갔습니다.

이제는 아무도 견제할 수 없는 인사권자 + 최고 실세가 된 거예요.

정방 제조까지 맡았고, 사람을 마음대로 뽑고 자르고,

관직은 팔았고, 자기 사람들로만 진용을 채웠습니다.

 

홍영통? 조민수?

같은 직위긴 했지만, 그 누구도 인사에 손도 못 댔어요.


🔥 “술 마셨지?” 유배 간 경복흥

경복흥은 청렴한 관리였습니다.

임견미는 그게 싫었죠.

명의 나하추 공격설이 돌자, 조정이 급히 회의를 여는데 경복흥이 술에 취해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임견미와 이인임은 바로 왕에게 일러바칩니다.

“저 사람, 술만 마십니다.

정사 돌볼 마음 없습니다.”

출처 입력

왕은 듣고, 경복흥은 유배길에 올랐습니다.

싫으면 없애는 정치, 그게 그들 방식이었죠.


📌 토지, 사람, 전부 다

임견미의 사유지는 산과 들을 이어졌고, 노비는 수천 명 단위였습니다.

좋은 땅을 보면, 노비를 보냅니다.

주인을 수정목으로 만든 몽둥이로 때려 쫓아내고, 그 자리에 기와를 얹었습니다.

 

왕릉, 궁궐, 지방 관청 땅까지

그 손 아래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백성은 도망치거나, 반항하다 죽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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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점을 넘은 순간

이때부터는 이인임조차 임견미를 제어 못 했어요.

"말 안 듣는다."

"자기 멋대로 한다."

"이건 좀 심하다."

소문이 돌았고, 민심은 곪아갔습니다.

그 와중에 조반 옥사 사건이 터지죠.


 

⚔️ 가장 먼저 무너진 이름

🧨 폭발은 예고돼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참았고, 왕도 참았고, 최영과 이성계도 지켜보고 있었죠.

그러다, 한 노비가 도화선이 됩니다.


📌 염흥방의 노비, 이광

1388년.

염흥방의 노비였던 이광이

조반의 토지를 빼앗습니다.

조반은 참다가

결국 이광을 죽여버립니다.

그리고 집에 불까지 질렀죠.

그건 단순한 살인이 아니었습니다.

“너희, 이제 너무 갔다.”

그 한 방이었죠.


🧠 조반 옥사

염흥방은 반격합니다.

조반을 체포하고, 가족들까지 싹 쓸어갑니다.

그리고 역모죄를 덮어씌워요.

누구도 상상 못한 일입니다.

그저 자기 노비가 죽었다는 이유로 한 고위 관리를 역적으로 만든 사건.

조반 옥사.

그건 곧, 무진피화의 신호탄이었습니다.


🔥 칼을 든 우왕

우왕도 이제는 못 참았습니다.

최영과 이성계도 움직입니다.

이인임은 유배, 염흥방과 임견미는 처형 명령이 떨어집니다.

 

민심은 갈라졌고,

정치는 폭발했고,

그 중심에 임견미가 있었습니다.


📌 백성들의 반응

그들이 죽던 날, 사람들은 길에 나왔습니다.

노래를 불렀고,

춤을 췄습니다.

"나라가 살아났다."

그게 백성들의 감정이었어요.

왕도, 신하도, 백성도— 임견미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다.


🧠 연좌, 멸문지화

그의 가족도 남지 않았습니다.

딸, 첩, 친척— 전부 관비로 끌려갔고, 처형된 사람만 천 명이 넘었다고 전해집니다.

 

탈취한 토지,

빼앗은 노비,

사람들의 원한은 산과 같이 쌓여 있었습니다.


📌 고려사 속의 평

“그는 시기가 많고 음흉했으며,

말재주는 있었으나,

이인임의 심복이 되어 권력을 휘둘렀다.

토지를 빼앗아 산과 들을 이었고,

노비 수천을 부렸으며,

왕릉과 궁궐 땅까지 점거했다.”

출처 입력

세상 사람들은

그를 당나라 최악의 간신 이임보에 견줬다고 했습니다.

그 이름은 끝내,

간신 중의 간신으로 기록됐습니다.


🔚 정치를 무기로 만들면

그 끝은 칼날로 돌아온다.

임견미는 권력의 끝을 봤고,

그 자리에서 가장 먼저 사라졌습니다.

백성은 환호했고,

조정은 숨을 돌렸고,

그리고 역사는

그 이름을 ‘경고’로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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