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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 중에 성을 버린 자들은, 모두 같은 최후를 맞지 않았다

곽주에서, 영주에서, 그리고 서경에서. 성을 버리고, 동료를 버리고, 전장을 벗어난 자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역사에 똑같이 기록되진 않았습니다.

오늘은 고려거란전쟁 속 '도망자'의 두 얼굴,

그리고 누가 '배신자'로, 누가 '공신'으로 남았는지를 살펴봅니다.


🧠 박섬, 배신자인가 공신인가

공부시랑 박섬은 청천강 너머까지 거란군이 진격하자, 안북도호부사 직책을 버리고 도주합니다.

도망 경로는 단순합니다. 영주 → 개경 → 고향 무안현.

그러나 운명의 장난처럼, 무안으로 향하던 길목에서 현종의 몽진 행렬을 만나고, 자연스럽게 일행에 합류합니다.

전주에 도착했을 땐,

"전주는 백제 땅이니, 태조께서 싫어하셨습니다"라며 행차를 장곡으로 유도하고,

나주에 이르러서는 다시 어가를 떠나 고향으로 빠집니다.

하지만 하공진이 거란 철군 소식을 전하자, 전주까지 되돌아와 현종을 알현하고, 개경 복귀 후엔 사재경, 장작감,

나아가 상서좌복야로까지 올라섭니다.

그리고 그의 초상은 공신각에 봉안됩니다.

문종은 아예 그를 가리켜

"말고삐를 잡고 호종한 충신"이라 했습니다.


🔥 탁사정, 도망자이자 배신자

1009년 정변 당시, 탁사정은 강조의 편에 섰고, 그 공으로 중랑장에서 급사중으로 승진합니다.

1010년, 제2차 거란 침공 시기엔

동북계도순검사로 파견되며 전장에 투입되지만,

서경 전투에서 지채문, 법언 등과 협공하며 한기 등 100여 명을 베고, 1,000기 기병을 패퇴시키는 등 적극적인 전공도 세웁니다.

하지만 거란군의 반격이 거세지자, 대도수 장군에게는 협공을 제안해 전면을 맡기고는, 자신은 밤중에 도망, 동료를 미끼로 삼습니다.

이후 그는 어사중승, 우간의대부로 다시 기용되지만, 같은 해 8월, 강조의 도당으로 몰려 유배되고 그 후 기록은 사라집니다.


📌 같은 도주, 다른 결말

두 사람 모두 전장에서 도망쳤습니다.

하지만 한 명은 공신각에, 다른 한 명은 유배지에 사라졌습니다.

차이는 무엇이었을까요?

탁사정은 강조 정변의 '도당'으로 명확히 적시되었고, 박섬은 강조 관련 기록이 없습니다.

그리고 박섬은 어가를 따라 움직이며 명분을 쌓았고,

호종의 공으로 인정받았죠.

역사는 도망의 경로보다, 그 이후의 노선을 평가합니다.


🕯️ 박섬, 유능한 기회주의자

백제를 운운하며 어가를 이동시키고, 전주에서 도망쳤다가 돌아와 다시 충성을 표한 박섬.

그는 다분히 기회주의적이었지만, 결국 왕을 따라 남행하고, 복귀한 어가를 다시 따랐습니다.

문종과 조정은 그를 처벌하지 않았고, 후대 역사서에도 그를 공신으로 인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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