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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이름, 이지란
이성계의 의형제. 하지만 그 한마디로는 부족했습니다.
고려 말, 전장의 용맹과 충성의 끝을 보여준 장수.
그리고 왕자의 난 이후, 사라진 전우.
이지란은, 그 모든 이름을 안고 있었습니다.

📜 이지란의 시작은 조금 달랐습니다
여진족 출신. 이름은 퉁두란. 귀화 후, 이씨 성과 청해 본관을 하사받으며 조선 청해 이씨의 시조가 됐죠.
"그가 태어날 무렵, 우물 위에 큰 별이 내려앉았다는 야사가 남아 있어요.
천문을 아는 자가 말하길, 위인이 태어날 징조라고 했죠."
이후 그는 고려에 귀화하고, 고려 장수로 활동하게 됩니다.
🔥 이성계와의 인연
사냥 중 사슴을 두고 다툰 두 사람. 활솜씨 대결로 이어졌고,
이지란은 이성계의 실력을 보고 감탄하며 의형제를 자처했다고 전해져요.
그는 이성계보다 4살 위였지만, 그만큼 이성계의 실력과 인격을 인정한 셈이었죠.
⚔️ 함께한 전장들
이지란은 이성계와 함께 전장을 누볐습니다.
1380년 황산대첩.
왜구 대장 아지발도.
이성계가 투구 정자를 쏘아 벗기자, 이지란이 바로 화살을 쏴 그의 얼굴에 명중.
"적장 아지발도, 그 한 방으로 끝났습니다."
또, 전투 중 이성계를 향해 달려드는 적을 보고 이지란은 두 번 외칩니다.
"형니메! 뒤에 있습니다!"
그리고는 활을 쏘아 그를 구했죠. 그만큼 호흡이 잘 맞았던 둘.

📌 그 후, 조선에서의 이지란
그는 조선 개국공신이 되었고, 나이가 많아 조정 활동은 활발하지 않았지만,
경상도 절도사, 동북면 도안무사를 역임하며 지역을 다스렸습니다.
왜구 방어, 여진과 조선인의 혼인 장려, 성곽 축조 등, 여전히 전방위 활약.
🔥 왕자의 난과 이방원
1차 왕자의 난 기록엔 그의 이름이 보이지 않지만,
2차 왕자의 난, 이방원을 도운 기록이 남아있어요.
이미 함경도 시절부터 함께했던 이방원의 형제들과 이지란은 깊은 유대를 맺고 있었죠.
개경 출신 신덕왕후의 자식들보단, 신의왕후 소생 자식들.
이지란의 입장은 분명했을 겁니다.

📜 마지막 기록
불교에 귀의.
그가 승려가 된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너무 많은 피를 보았습니다."
연려실기술에 따르면, 그는 상투를 자르고 상소에 담아 올리며 말합니다.
"죽은 자들을 위한 속죄의 의미로, 중이 되어 살고 싶습니다."
태종 이방원에게는 이렇게 남깁니다.
"신은 본토의 사람으로 타국에서 죽게 되었으니, 시신을 태워 본토에 장사지내어, 본토의 풍속을 따르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마지막.
"조심, 조심, 덕을 닦아 영원히 조선을 보전하십시오."
그렇게, 이성계의 가장 가까운 자였던 한 사람이 그의 곁을 영원히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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