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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고려 제2차 거란 전쟁에서 거란의 성종을 속이고 철군을 이끌어내며 나라를 구한 충신, 하공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그의 용기와 지략, 그리고 죽음 이후에도 계속된 후손들의 영광까지, 하공진의 삶을 되짚어봅니다.


하공진의 초기 경력

하공진은 제1차 고려-거란 전쟁이 끝난 뒤인 994년, 압강도 구당사라는 직책에 임명되어 압록강 지역을 관할했습니다.
이후 특별한 기록 없이 지내다가, 목종 시절 중랑장으로 임명되며 활동을 재개합니다.

목종이 궁궐 화재로 병석에 눕게 되자, 하공진은 친종장군 유방, 중랑장 탁사정과 함께 목종을 호위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서좌사낭중에 임명되었으나, 목종이 후계자를 정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강조의 정변에 동참하며 현종의 즉위를 돕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유배와 복직: 2차 거란 전쟁의 시작

1010년, 하공진과 유종은 과거의 실책으로 인해 현종에 의해 유배됩니다. 그 이유는 하공진이 여진인을 공격했다가 실패했고, 이를 계기로 유종이 여진인을 학살하며 거란과의 외교 관계가 악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은 거란 성종이 강조의 정변을 빌미로 고려를 침략하게 된 원인이 되었습니다. 현종은 이를 문제 삼아 두 사람을 유배 보냈지만, 거란군이 실제로 고려를 침략하자, 하공진을 소환해 관직을 복직시켰습니다.


하공진, 거란 성종을 속이다

하공진은 거란군이 강조를 처형한 이후에도 철수하지 않자, 자신이 직접 거란과의 협상을 맡겠다고 자청합니다. 현종의 허락을 받은 하공진은 거란 진영으로 가서 성종과 담판을 벌였습니다.

그는 거란 성종에게 현종이 강남으로 피난 중이며 친조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설명하며, 강화와 철군을 요청했습니다. 하공진은 성종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볼모로 내세우는 지략으로 성종의 신뢰를 얻었고, 거란군은 결국 철수하게 됩니다.


거란에서의 볼모 생활과 최후

하공진은 철군을 이끌어냈지만, 볼모로 거란에 잡혀가게 됩니다. 이후 그는 고영기와 함께 귀국을 계획했으나 실패했고, 거란 성종은 그를 감시하기 위해 거란의 귀족과 강제 결혼시키며 억류했습니다.

그러나 하공진은 끝까지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켰습니다. 거란 성종은 하공진을 회유하며 자신의 신하가 될 것을 권유했지만, 하공진은 이를 단호히 거절하며 "만 번 죽더라도 고려의 신하로 남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결국 거란 성종은 그를 사형에 처했으며, 그의 충절과 능력에 감명받은 거란군은 하공진의 심장과 간을 먹으며 그의 기개를 기렸다고 전해집니다.


사후의 명예와 후손들의 영광

하공진의 죽음 이후에도 고려는 그의 공로를 기리며 공신으로 추앙했습니다. 그의 아들 하칙충은 녹봉과 관직을 받았으며, 문종 시기에는 하공진의 초상이 공신각에 그려졌습니다.

이후 예종과 충선왕 시대에도 하공진의 공훈은 계속해서 언급되었고, 그의 후손들은 왕으로부터 관직과 시를 하사받는 등 영광을 이어갔습니다.


하공진의 교훈

하공진은 자신의 지략과 충절로 나라를 위기에서 구했을 뿐 아니라, 끝까지 고려에 대한 충성을 지키며 역사의 중심에 선 인물입니다. 그의 삶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교훈을 전합니다. 고려가 그를 추모하며 후손들에게 은혜를 베풀었던 것처럼, 우리도 선조들의 헌신을 기억하고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https://youtu.be/Nx5wRLwEVq8?si=mo2UHZmD7t8Pf2X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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