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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숨겨진 장군, 정성과 정신용

“역사는 기록되지 않은 자의 이름을 잊는다.”
하지만 그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다고 해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고려 거란 전쟁의 숨은 주역, 정성과 정신용. 이들은 적에게 맞서 싸웠고, 목숨을 바쳤으며, 전장을 피로 물들였습니다. 다만, 역사서에 남긴 흔적은 생각보다 짧고 희미할 뿐입니다.
혼란의 시대, 고려 제8대 왕 '현종'
고려는 거란과 세 차례의 대규모 전쟁을 치렀습니다. 제2차 고려거란전쟁 당시, 수도 개경이 불타고 왕이 피난을 떠나야 했던 혼란 속에서 등장한 이가 바로 정성입니다.
흥화진사였던 정성은 도순검사 양규, 부사 이수화 등과 함께 흥화진을 방어하며 활약했지만, 2차 전쟁 이후 그의 이름은 고려사에서 자취를 감춥니다. 전사했거나, 혹은 개명했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전장을 바꾼 이름, 정신용의 등장
1014~1015년, 고려와 거란은 크고 작은 국지전을 계속 벌였습니다. 그 전투의 중심에 선 인물이 바로 정신용입니다. 그는 흥화진에서 거란군을 막아내고, 통주 전투에서도 수백의 적을 섬멸하는 전공을 세웁니다.
하지만 1015년 9월, 통주 후방에서 거란의 대대적인 반격이 시작됩니다. 정신용은 후미를 타격하다 전사하며, 그의 이름은 고려의 장렬한 기록으로 남습니다. 이듬해 현종은 정신용을 대장군으로 추증하고, 그의 유가족에게 토지와 곡식을 하사합니다.
정성과 정신용, 한 사람일 가능성?
정성은 제2차 전쟁까지만 기록이 남아 있고, 정신용은 그 이후에만 나타납니다. 두 사람 모두 흥화진을 중심으로 활약했으며, 성이 '정(鄭)'씨로 동일합니다. 호부낭중에서 장군으로의 승진 흐름도 자연스럽고, '신(神)용(勇)'이라는 이름 역시 개명 가능성을 뒷받침합니다.
무엇보다, 다른 흥화진 방어자들에 비해 지나치게 기록이 단절된 정성과 갑자기 등장한 정신용. 이 둘은 단절된 기록을 이어주는 하나의 실마리가 될지도 모릅니다.
역사에 남지 못한 영웅들에게
1014~1015년의 국지전은 제2차·제3차 고려거란전쟁에 비해 덜 주목받습니다. 그러나 정신용을 비롯한 수많은 무관들이 그 사이에서 나라를 지켜냈고, 이들의 피 위에서 강감찬의 귀주대첩이 가능해졌습니다.
당신은 기억하실 겁니다. 이름이 사라진다 해도, 그 정신은 역사 속에 남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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